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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이성계 조선 건국

by SUNG & SOL 2015.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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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은 원간섭기 이래 권문세족과 그를 위시한 재상지종 10가문(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을수있는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가운데 공적영역이 아닌 사적영역, 즉 산과 강을 경계로하는 대농장이 성행하고, 왜구와 

여진의 노략질로 백성들이 유망하는 등 나라가 흔들렸던 때입니다. 

이에 개혁을 하고자 두개의 입장이 갈리게 됩니다. 즉 정몽주를 위시한 온건사대부와, 이성계를 위시한 강경파로

온건파의 경우, 고려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당시 권력자의 경제적 기반이되던 사전을 혁파하고 그 운영상의 

문제점만 걷어내려합니다. 강경파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본부터 바꾸자고 하였지요. 

그 와중에 이성계는 그를 보필하던 정도전을 위시한 사대부들에 의해 추대되었고, 이성계 자신도 그에 뜻을 

실행에 옮깁니다. 선죽교의 정몽주 암살사건을 보면 당시 이성계도 망설이고 있지 않았나 합니다.

결국 쉽게 결정을 못하고 있던 이성계를 대신하여 이방원이 정몽주의 암살을 하였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역성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위화도회군이 역성혁명의 시발점이자 근본적인 시작이라 대부분 생각하고 있지만 위화도회군은 사실상 이성계가 가진 막강한 군사력이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이 될것이라 판단한 최영과 그 일파가 당시 원을 멸망시킨 명에 대해

원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북벌을 강행한 것입니다. 목적은 이성계의 군사력을 꺾어 정치적 생명과 그의 기반을 

흔들어 놓는 것. 또한 영토도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계책이었습니다.

이에 이성계는 자신을 보존하고자 군사를 돌리고 최영을 숙청하여 권력을 잡습니다. 

따라서 위화도 회군은 역성혁명을 하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건국은 고려말 개혁의 흐름 중에 일어난 것이며,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결에서 강경파가 승리하며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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