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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트렌드 생각하기

혈전성 외치핵 – 생애 첫 경험, 그리고 불신

by SUNG & SOL 2018.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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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회사에서 도쿄 빅사이트 국제전시장에 출품을 한 적이 있다.

대규모 출품은 아니었고, 따지면 생색내기용 비슷한 거였는데.

뜬금없이 나 혼자 출장 가서 부스를 지키는 걸로 결정이 났었지.

보통 전시회는 2~3명이 기본으로 참가하니까 말이야…

어쨌든 그 전시회는 3박 4일간 열리는데 매일 같이 사람들이 인산인해였어.

참고로 도쿄 빅사이트에 있는 국제전시장은 규모가 거대해서

동시에 몇 가지나 되는 전시회가 열리곤 했거든,

 

어쨌든 혼자서는 처음 참가하게 된 전시회라 은근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 첫날 공항에서 바로 전시회장으로 이동해서

발송 받은 전시품을 부스에 진열하고, 카탈로그 정리하고

준비해갔던 접대용 과자, 사탕 음료들도 깔끔하게 다 셋팅 해놓고

둘째 날부터 지옥의 전시회가 시작되었지….

 

적다 보니 혈전성 외치핵과 전혀 상관이 없는 글이 되고 있는데

이게 원인이라 생각하니까… 적는 거야…

전후 설명이 없으면 안되니까 말이야…

 

어쨌든 둘째 날, 10시부터 전시회 시작이지만 9시에 전시회장에 도착,

부족한 건 없나, 전시품에 문제는 없나 등등 체크,

10시부터 고객맞이를 했지. 이 때만 해도 팔팔하고 활기 찼었지.

전시 부스들 사이가 모두 통로라서 사람들이 쉬지 않고 지나 다니니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제품을 보고 상담하러 들어오든지 해야

상담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거의 그냥 지나만 다니네, 말을 걸고, 설명 드릴까요 라고 물어봐도

괜찮다고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상담석에서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겠다 해도 괜찮다고

서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야기 하더라구.

어쨌든 오후 세시쯤 되니까,(점심 굶고 계속 서 있었지.) 슬슬 서 있기가 힘든 거야

다리가.. 다리보다는 발바닥이지.. 좀 많이 아프더라고.

일단 참아 가며 손님들 더 불러 들이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말을 막 걸고 그랬어.

사람들 설명해줄 때만큼은 발 아프고 그런 게 전혀 없었거든.

 

어쨌든 오후 5시에 전시회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어떻게든 앉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더라. (내가 원래 버스, 지하철 타면 자리가 있어도 절대 앉는 타입이 아니거든…)

 

그래서 편의점에서 저녁에 먹을 도시락, 아침에 먹을 도시락까지 사서 바로 호텔방으로 직행

저녁 먹고, 바로 욕실로 가서 욕조에 물 받아놓고 발을 막 주물렀지.

그리곤 욕조에서 2시간 정도 자고, 욕실에서만 3시간 이상 있었지.

그리고 다음 날 또 9시부터 전시회장 입장 어제 다리가 너무 아팠으니까

전시회 시작할 때까지는 앉아 있자고 의자에 앉아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

일도 하면서(전날에도 자기 전에 1시 정도까지 메일 온 것 중에 내가 정리할 거랑

첫날 전시회 보고서 작성했었네… )

그렇게 삼일 째 되는 날도 역시 전날이랑 같은 패턴이었어.

대신 다리 아픈 건, 12시가 되기 전부터 시작되더군.ㅜㅜ

 

역시 배는 안 고파서 점심은 굶고 계속 호객행위?에 집중했지.

설명하고 이야기할 때는 이상하게 다리가 전혀 안 아팠으니까.

손님들 관심 보이는 듯 하면 설명해줄게 들어오라고 웃으며 대응했거든.

그러면서 발은 계속 동동 구르고, 땅을 쿵쿵 박차고

발바닥이 너무 아프니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발이 아프기 전의 한 시간은 금방인데… 발이 아프다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의

한 시간은 3~4시간인 것처럼 느껴져… 이제 한 20분 지났겠지 하고 시간을 보면

10분도 채 되지 않은 거야. 절망이지.

발이 아프니까 욱하는 마음도 생기고, 내 몸을 비집고 몸 속의 헐크가 기어나올 것 같은

기분도 막 들고, 화를 못 참겠는거야..

그래도 미소를 머금고 지나다니는 손님들한테 ‘콘니찌와’ ‘이카가데스까’ 등등

호객행위?를 하며 버텼지…

마음 속으로는 그냥 상담석에 가서 앉아버릴까? 부스를 버리고 나가서 한 삼십분만 쉬다 올까?

등등 온갖 잡생각은 다 들고, 시간은 죽어라 안 가고, 미치는 줄 알았어.

여차저차 그날도 자리에 앉지 않고 용케 버티며 전철을 몸을 싣는데…

땅바닥에라도 주저앉고 싶은 거야. 정장입고 그리고 특히 일본인들 앞에서 추태부리고 싶진 않고.

꿋꿋히 참고 참고 또 참으면서 이온(대형마트)에 들러서 저녁거리, 아침거리 사고, 개인적으로

휴족시간을 사서 호텔로 복귀했어.

그날은 저녁도 안 먹고 바로 욕조에 물 받아서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지.

쪼물쪼물, 쿵쿵, 토닥토닥.. 이 날은 그렇게 주물러도 시원하지가 않았어…

일단 또 두세시간 욕조에 있다가 나와서 휴족시간 덕지덕지 붙이고,

저녁 먹고, 대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되었지.. 이제 살 수 있다는 희망과

내일은 어떻게든 좀 앉아야지 하는 마음으로…말이야.

이 날은 또 잠이 안 와서 보고서 다 쓰고, 2시 넘어서까지 티비 보다가 잤네…

 

그리고 전시회 마지막 날, 또 9시에 전시회장 도착해서

어제의 휴족시간의 효과를 느끼며 오전 시간을 보냈어.

발바닥이 시원해서 좋더라구.. 하지만 12시가 되어가니 아무 소용 없더라…

게다가 동경에 파견 나가 있던 직장상사도 마지막 날에는 지원한다고 와 줘서,

앉아 보겠다는 꿈은 물 건너 가버렸지.

상사도 나도 점심 굶고, 둘 다 서서 일도 하고 호객행위도 하고

잠깐씩 회사이야기도 하고… 그래도 다리가 너무 아파… 아니 발이…

상사는 내가 부스에 있으니 다른 부스 영업하러도 다녔거든.

상사가 없으면 발을 동동 구르고 땅바닥을 쿵쿵 힘차게 내차고,(점프는 못하니까)

부스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고통을 버텨냈어…

마지막 날 시간은 국방부 시계만큼이나 느리게 가더군.

 

그렇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전시회가 끝났다…

상사는 내가 수고했다고 간단하게 저녁이나 같이 하자며

도쿄 번화가 쪽으로 나를 데려갔지…ㅜㅜ

발이 너무 아파서 죽을 지경인데 전철에 서서 숙소 반대편으로 가고 있으니

어쨌든 간단하게 맥주도 마시며 회사이야기를 하며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출장 와서 처음으로 맛있는 음식도 얻어 먹었고,

그렇게 9시경에 헤어지고 나는 또 아침을 사가지고 호텔로 복귀

다음날은 아침에 귀국하는 스케줄 밖에 없으니 보고서부터 마무리 짓고,

밤새 욕조에서 졸다가 깨면 다시 뜨거운 물 받아 발 주무르고 기대어 있다가를 반복

새벽에 나와 침대에서 제대로 잤지…

 

그렇게 토요일 오후에 한국 도착해서 옷 갈아입고 바닥에 앉는데

그런데 여기서 문제… 뒤가 불편한 거야…ㅡ.ㅡ;;;

똥꼬가 좀 아픈 듯 하고, 그래서 만져봤는데, 아프고 뭐가 만져지네?

어제 발을 계속 쎄게 쿵쿵 굴렀던 것 때문에 탈장이 된 건가…

아니면 치질이란 게 갑자기 생기는 건가?

온갖 걱정이 다 드는 거야. 그날부터 인터넷 검색을 미친 듯이 했어.

아무래도 탈장은 아닌 거 같아서 이것 때문에 병원 응급실은 아닌 거 같고…

갑자기 생긴 거니, 가라앉겠지 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되니 더 아프고

더 커진 것 같은 거야(콩알?). 완전 겁이 나더라고, 또 인터넷 검색을 미친 듯이 하고

지식인에도 간단히 상황 설명하고 문의도 해뒀어.

그러다 이것 저것 찾아보니 혈전성 외치핵이라는 게 가장 가까운 것 같더군.

그리고 출근해서도 불편함은 더해만 갔는데, 일이 바빠서 병원도 못 가고

지식인 답변도 없고, 초조해져 가는 마음은 커져만 가고, 죽을 맛이었어.

월요일 저녁에 지식인 의사선생님이 증상을 봐서 혈전성 외치핵 같다고

가만 놔두면 가라앉을 거지만 불편하면 병원 가서 진료 받는 게 맞다 그러시네

그 때 그 답변의 고마움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거였어.

어쨌든 불편함이 가시질 않고 너무 아프니까.

병원엘 갔지, 불안한 마음에 항문 대장 관련 이름 있는 큰 병원에 갔어.

진료 봐주는 의사가 왜 왔어요? 그러길래 아무래도 갑자기 치질이 좀 생긴 것 같다고 하니까

저기 누워서 바지 내리세요. 그러더군. 그래서 누워서 초간단하게 치질 생기기 전 3일간

10시간 이상 서서 쿵쿵 발을 구르고 욕조 안에 너무 오랜 시간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 해줬어.

그랬더니 걸어오면서 뭐 그렇게 일 시키는 데가 있어요?

그래도 나도 17시간씩 수술하고 해도 그런 거 안 생기던데 그러더니

엉덩이 까더니 치질 맞네. 수술 해야겠는데, 수술하면 하루, 이틀 정도 입원해야되는데, 그러길래

수술 꼭 해야하나요? 그러니까 수술 안해도 되긴 하는데 오래 고생해야 될 거라고,

그리고 나중에 아프고 하진 않겠지만 한 번 튀어 나온 건 안 없어진다고 그러더군.

불안하긴 했지만, 일도 해야 되고, 안되면 나중에 수술하면 되지란 생각에 그냥 약 먹겠다하고 왔어

지금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병원 갔다 온 다음 날부터 아픔은 없어졌고

(혈전성 외치핵은 처음 3~4일간 아파서, 이 때 사람들도 병원을 많이 찾는단다. 나처럼)

크기도 점점 줄더니 2개월 지난 후였나 거의 없어졌어.

치질 수술하면 한동안 고생한다던데… 정말 아찔하다.

의사를 믿고 갈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깝네. 치과의사 강창용 씨 이야기를 들어봐도

실력 있고 양심적인 의사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필요하지도 않은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으며 고생하고 돈 쓰는 사람들이 많을 생각을 하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다. 혈전성 외치핵 하나로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실을 비약하는 건

어이가 없긴 하지만, 뭣 모르고 치질 수술했을 걸 생각하면 치가 떨려서

그냥 둘 순 없다는 생각에 적어본다.

진짜 너무 한다.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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